어제 아마존과 퀄컴이 손을 잡았습니다. 아마존이 쓰는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AI 칩을 두 회사가 함께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퀄컴은 휴대폰에 들어가는 칩을 만드는 회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분 주머니 속 휴대폰에 이 회사 칩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회사가 데이터센터로 진입해 들어갑니다.
두 회사의 거래 규모는 최대 6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80조 원입니다. 그런데 더 눈에 띄는 것은 값을 치르는 방식입니다. 아마존은 지불하는 대가로 퀄컴 주식을 받기로 했습니다.
공부와 시험
먼저 이 협력이 무엇을 겨냥하는지부터 보겠습니다. 두 회사가 밝힌 첫 목표는 추론입니다.
AI는 크게 두 단계를 거칩니다. 사람으로 치면 공부와 시험입니다.
그림 1. AI 하나를 만들어 쓰는 데 드는 일
공부에 해당하는 것이 학습입니다. 엄청난 양의 글과 사진을 읽히면서 AI를 만드는 과정이고, 몇 달에 걸쳐 한 번 합니다. 지금까지 AI 칩 이야기는 대부분 이쪽이었습니다. 그래픽카드 몇 만 장을 모아 몇 달을 돌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시험에 해당하는 것이 추론입니다. 다 만들어진 AI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받는 일입니다. 즉 우리가 AI에게 무언가를 물어볼 때마다 답변을 받는 일입니다.
공부는 한 번이지만 시험은 쓰는 사람 수만큼, 질문 수만큼 매번 치릅니다. 그래서 AI를 쓰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시험 쪽 일감이 공부 쪽을 넘어섭니다. 지금이 그 넘어가는 지점입니다.
그리고 두 단계는 요구하는 것이 다릅니다. 공부는 한 번에 얼마나 쎄게 계산하느냐가 중요하고, 시험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도는 일이라 전기를 얼마나 적게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퀄컴이 잘하는 것이 바로 후자입니다. 휴대폰은 손바닥만 한 배터리로 하루를 버텨야 하니 퀄컴의 전기를 아끼는 설계 기술을 데이터센터로 가져가겠다는 것이 이번 협력의 목적입니다.
아마존은 왜 직접 만들려고 할까
지금 AI 칩 시장은 엔비디아가 거의 다 가지고 있습니다.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면 엔비디아에 기대야 하고 값도 엔비디아가 정합니다.
아마존은 세계에서 가장 큰 클라우드 회사입니다. 해마다 AI 설비에 쏟는 돈이 수십조 원 단위입니다. 그리고 그 돈의 상당 부분이 엔비디아 한 회사로 들어갑니다. 칩을 살 곳이 사실상 한 곳뿐이니 값을 깎을 여지도, 언제 받을지 정할 여지도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마존은 자기가 쓸 칩을 자기가 설계하는 쪽으로 움직여 왔습니다. 이번 퀄컴과의 협력도 그 연장선입니다. 엔비디아를 대체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엔비디아 말고도 구매처를 하나 더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마존은 몇 해 전부터 자기가 쓸 AI 칩을 직접 설계해 왔습니다. 다만 설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칩 하나를 제대로 만들려면 설계도 있어야 하지만, 그 설계를 실제 칩으로 바꾸는 기술도 있어야 하고, 그 칩을 쓸 프로그램도 있어야 합니다. 퀄컴은 이 세 가지를 오래 해 온 회사입니다.
칩을 구매할 곳이 둘이 되면 값을 깎을 힘이 생깁니다. 한 곳에서 공급이 늦어지면 다른 곳에서 받으면 됩니다. 부품을 많이 쓰는 회사라면 어디나 하는 일이고, 아마존은 AI 칩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두 회사는 칩만이 아니라 데이터센터 안에서 자료를 주고받는 통신 기술도 함께 만듭니다. 빛으로 신호를 보내는 방식이고, 1초에 1.6테라비트를 나르는 수준을 목표로 합니다.
돈 대신 주식
이번 발표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계약 조건입니다.
그림 2. 아마존과 퀄컴이 맺은 약속
아마존은 2036년 9월까지 퀄컴의 칩과 통신 장비, 생산 서비스에 최대 600억 달러를 쓰기로 했습니다. 그 대가로 퀄컴은 아마존에게 퀄컴 주식 최대 2,500만 주를 정해 둔 값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줍니다.
주식을 살 권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잠깐 보겠습니다. 지금 주가가 얼마든 상관없이, 미리 정해 둔 값에 살 수 있게 해 주는 약속입니다. 나중에 주가가 그 값보다 오르면 차액만큼 이득이고, 오르지 않으면 그냥 안 사면 됩니다. 손해 볼 일은 없고 이득만 남을 수 있는 조건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조건이 붙습니다. 600억 달러를 실제로 다 써야 이 권리가 온전히 생깁니다. 조금 쓰면 조금만 생기고, 안 쓰면 안 생깁니다.
이 구조가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아마존은 퀄컴 칩을 많이 살수록 퀄컴 주식을 싸게 살 권리를 얻습니다. 퀄컴이 잘되면 아마존도 이득을 봅니다. 즉 아마존은 부품을 사는 손님이면서 동시에 그 회사의 주주가 될 수 있는 자리에 섭니다.
구매자는 한 푼이라도 싸게 사고 싶어 하고, 주주는 그 물건이 비싸게 팔리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계약은 두 자리를 한 회사가 갖게 만듭니다.
그래서 아마존에게는 계산이 달라집니다. 값을 심하게 깎아서 퀄컴이 휘청이면 자기가 가진 권리의 값도 떨어집니다. 반대로 퀄컴 칩이 다른 회사에도 잘 팔리면 자기 몫이 커집니다. 사고파는 사이를 넘어 같이 잘돼야 하는 사이가 되는 것입니다.
퀄컴 쪽 계산도 보겠습니다. 십 년치 주문을 미리 받아 두었으니 공장을 늘리고 사람을 뽑는 데 돈을 넣을 수 있습니다. 물건이 팔릴지 모르는 상태에서 먼저 짓는 것과, 살 사람이 정해진 상태에서 짓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아마존이 이 방식을 처음 쓴 것도 아닙니다. 올해 2월에는 유럽의 반도체 회사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 계약하면서 그 회사 주식 약 2,480만 주를 살 권리를 받았습니다. 반년 사이에 같은 방식을 두 번 썼습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사실은 AI 칩을 만드는 일에는 돈이 워낙 많이 들어서, 만드는 회사 혼자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겠다는 약속을 미리 받고 시작합니다. 주식은 그 약속을 붙들어 두는 장치입니다.
퀄컴 주가는 발표 당일 10% 올랐습니다.
한국은 어디에 있을까
퀄컴이 추론용 칩을 만들려면 HBM이 있어야 합니다. AI 칩 옆에 붙이는 특수한 메모리인데, 왜 필요한지부터 보겠습니다.
AI는 배운 것을 숫자로 저장해 둡니다. 답을 낼 때는 그 숫자를 꺼내 봐야 하는데, 양이 워낙 많아서 계산하는 속도보다 꺼내 오는 속도가 더 문제가 됩니다. 칩은 계산할 준비가 됐는데 자료가 아직 안 와서 기다리는 상황이 생기는 것입니다.
HBM은 그 기다림을 줄이려고 만든 메모리입니다. 보통 D램은 계산하는 칩과 좀 떨어진 자리에 꽂히는데, HBM은 D램을 여러 장 위로 쌓아 계산하는 칩 바로 옆에 붙입니다. 거리가 짧아지고 오가는 통로가 넓어지니, 같은 시간에 훨씬 많은 자료가 이동합니다.
이 HBM을 만들 수 있는 회사는 세계에 셋뿐이고, 그중 둘이 한국 회사입니다.
그런데 퀄컴은 HBM 말고 다른 방식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름은 HBC입니다. 휴대폰에 들어가는 저전력 D램을 쌓아 연산하는 칩 바로 위에 올리는 구조입니다. 옆이 아니라 위입니다. 거리를 더 줄여서 자료를 더 빨리 주고받자는 것입니다.
그림 3. 전기를 같게 두고 비교하면
퀄컴은 같은 전기를 쓸 때 HBM보다 여섯 배를 처리한다고 밝혔습니다. 앞에서 본 대로 추론은 하루 종일 도는 일이라, 전기당 처리량이 곧 돈입니다.
그럼 이 새 메모리는 누가 만들까요.
| HBM | HBC | |
|---|---|---|
| 쓰는 D램 | 전용 D램 | 휴대폰용 저전력 D램 |
| 쌓는 회사 | 삼성전자 · SK하이닉스 | 삼성전자 · SK하이닉스 |
| 퀄컴이 맡는 일 | — | 설계와 조립 |
퀄컴은 설계와 시스템 통합만 맡습니다. D램을 실제로 쌓아 올리는 일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합니다.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퀄컴은 지난 6월 투자자 행사에서 HBC를 발표하면서 HBM의 단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했습니다. HBM을 만드는 두 한국 회사가 화를 낼 것으로 예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만나 보니 두 회사가 오히려 먼저 협력하자고 했다는 것이 퀄컴 임원의 설명입니다.
지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을 계속 만들면서 HBC도 함께 개발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이겨도 D램을 쌓는 일은 자기들 몫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짚어 둘 것이 하나 있습니다. 쌓는 회사는 같아도 무엇을 쌓느냐가 다릅니다.
HBM은 AI 전용으로 만든 비싼 D램입니다. 반면 HBC에 들어가는 것은 휴대폰에 쓰는 흔한 D램입니다. 흔한 부품은 대체로 값이 쌉니다. 같은 양을 팔아도 손에 남는 이익이 다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값이 어떻게 매겨질지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쌓고 붙이는 일이 어려우면 그 값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HBM이 지금 두 회사의 이익을 끌어올린 주역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 자리를 무엇이 대신하느냐는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무엇을 보면 될까
퀄컴이 내년에 내놓겠다고 한 첫 HBC 제품입니다. 이것이 실제로 나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HBM 말고 팔 물건이 하나 더 생깁니다. 안 나오면 지금 이야기는 발표로 끝납니다.
자, 지금 AI에게 무언가를 물어본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리고 그 질문의 답변이 나에게 오기까지 경로를 상상해 봅시다.
답을 기다리는 그 몇 초 사이에, 바다 건너 어느 데이터센터에서 칩이 돌고 메모리가 자료를 나르고 전기가 소요됩니다. 질문 한 번에 드는 값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한 번이 하루에 수억 번 쌓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아마존이 십 년치 주문을 걸고 퀄컴과 손을 잡은 것도 여기서 설명이 됩니다. 지금 큰 회사들이 다투는 것은 더 똑똑한 AI를 만드는 일만이 아닙니다. 이미 만들어 둔 AI에게 답 하나를 받는 데 드는 비용을 낮추는 일입니다.
한 번에 몇 원이 줄어드는지는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몇 원에 수억을 곱하면 회사의 손익이 달라집니다. 오늘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질문 하나가, 그 수억 번 가운데 한 번입니다.
참고문헌
- Qualcomm 보도자료 및 관련 보도, 2026.9.8 — AWS와 다세대 맞춤형 반도체 공동 개발. 초기 초점은 AI 추론. 1.6Tbps 광 연결 기술 병행. 아마존에 퀄컴 주식 최대 2,500만 주 매입 권리 부여, 2036년 9월까지 최대 600억 달러 집행 조건. 발표 당일 퀄컴 주가 약 10% 상승
- 디일렉, 「퀄컴-아마존 AI 데이터센터 협력…80조원 규모」, 2026.9
- 디일렉, 「퀄컴 "삼성·SK하이닉스 HBC에 적극적…HBM과 병행 개발"」, 2026.8.27 — HBC는 저전력 D램(LPDDR)을 쌓아 연산 칩 위에 배치하는 구조. 동일 전력 기준 HBM 대비 대역폭·토큰 처리량 6배. 퀄컴은 설계·시스템 통합,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D램 적층 담당. 1세대 제품 내년 상용화 예정
- STMicroelectronics 뉴스룸 및 관련 보도, 2026.2.9 — AWS와 다년·수십억 달러 규모 협력. AWS에 ST 주식 약 2,480만 주 매입 권리 부여
© 2026 AI7LAYER 출처를 밝히면 자유롭게 인용할 수 있습니다. 인용 표기: AI7LAYER, 「아마존이 칩값을 주식으로 치르기로 했습니다」, 2026.9.9, ai7layer.com 무단 전재(전문 복사)는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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