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을 충전하다보면 핸드폰 충전기가 따뜻하고, 오래 쓰면 뜨겁다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 따뜻함은 어디론가 사라진 전기입니다. 콘센트에서 나온 전기가 전부 배터리로 들어가지 않고 일부가 열이 되어 공중으로 빠져나간 것입니다.
집에서는 그냥 넘어갈 일입니다. 불과 몇 와트 정도이니 신경 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AI 데이터센터에서는 이 열이 가장 큰 숙제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AI를 돌리는 데 필요한 것이 그래픽카드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카드를 사 놓고도 다 켜지 못하는 일이 생깁니다. 카드가 아무리 많아도 그 카드까지 전기를 제대로 보내지 못하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데이터센터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전기가 열에너지로 바뀝니다
먼저 충전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보겠습니다.
집 콘센트에는 220볼트짜리 전기가 들어옵니다. 그런데 휴대폰 배터리가 받는 전기는 5볼트 안팎입니다. 게다가 콘센트의 전기는 방향이 계속 바뀌는 교류이고, 배터리가 쓰는 것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직류입니다. 충전기는 이 둘을 모두 바꿔 줍니다.
바꿀 때마다 전기의 일부가 열로 빠져나갑니다. 백을 넣으면 백이 나오지 않고 아흔 몇이 나옵니다. 나머지는 충전기 표면의 그 따뜻함입니다.
집에서는 이 손실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충전기 한 개가 5와트를 쓰는데 그중 몇 퍼센트가 새는 정도라면 하루 종일 꽂아 둬도 요금표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데이터센터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서버 랙 한 대가 쓰는 전기
데이터센터 안에는 랙이라는 것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사람 키만 한 철제 선반이고, 여기에 얇고 넓적한 서버를 층층이 꽂습니다.
이 랙 한 대가 쓰는 전기가 이렇게 늘었습니다.

그림 1. 서버 랙 한 대가 쓰는 전기
지금 AI 서버 랙은 낮게 잡아 120킬로와트, 높은 것은 500킬로와트를 씁니다. 그리고 2020년대가 끝날 무렵에는 1메가와트, 그러니까 백만 와트짜리 랙이 나올 것으로 봅니다.
백만 와트는 천 와트짜리 전기 주전자 천 개를 동시에 켜 놓은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철제 선반 한 대 안에서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 전기가 서버에 곧장 꽂히는 것도 아닙니다. 건물로 들어온 전기를 랙까지 보내고, 랙 안에서 서버가 쓰는 전압까지 여러 번 낮춥니다. 충전기가 하는 일을 훨씬 큰 규모로 반복하는 셈입니다.

그림 2. 전기가 서버 칩까지 오는 길
그림처럼 전압을 낮추는 자리마다 열이 납니다. 충전기 하나에서는 몇 와트라 손끝에 느껴지는 정도이지만, 랙 한 대에서 몇 퍼센트만 새어도 수십 킬로와트가 열로 바뀝니다.
가정용 전기난로가 한 대에 천 와트에서 이천 와트쯤 됩니다. 즉 전기난로 수십 대를 선반 하나 안에 켜 둔 것과 같은 열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열은 그대로 두면 기계가 멈추니 반드시 식혀야 하고, 식히는 데 또 전기가 듭니다.
그래서 800볼트로 갑니다
여기서 해법이 나옵니다. 같은 양의 전기를 보낼 때 전압을 높이면 흐르는 전류가 작아집니다. 그리고 열은 주로 전류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전압을 올리면 같은 전기를 보내면서 열을 줄일 수 있습니다.
엔비디아가 밀고 있는 것이 800볼트 직류 구조입니다. 랙까지 높은 전압으로 보내고, 서버 바로 앞에서 낮추는 방식입니다.
그러려면 800볼트를 서버가 쓰는 몇 볼트까지 안전하게 낮춰 주는 부품이 필요합니다. 이 부품을 전력반도체라고 부릅니다. 계산을 하는 반도체가 아니라 전기를 다루는 반도체입니다.
지금까지는 실리콘으로 만들었는데, 높은 전압과 높은 열을 견디기 어려워 다른 재료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실리콘카바이드와 질화갈륨입니다. 둘은 맡는 자리가 다릅니다.
높은 쪽이 실리콘카바이드입니다. 1,200볼트가 넘는 전압까지 감당해서, 건물에서 랙으로 오는 높은 전압을 받아 800볼트로 낮추는 자리에 씁니다.
낮은 쪽이 질화갈륨입니다. 650볼트 안팎이 주력이라 그보다 높은 전압은 다루지 못합니다. 대신 랙 안에서 서버 기판을 거쳐 칩이 쓰는 1볼트 안팎까지 마지막으로 낮추는 자리를 맡습니다.
돈의 흐름
업계의 투자를 관찰해보면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그 흐름을 알 수 있습니다.
최대 전력반도체 회사인 인피니언은 지난 2월 연간 투자 계획을 22억 유로에서 27억 유로로 늘렸습니다. 우리 돈으로 3조 6천억 원에서 4조 4천억 원입니다. 늘린 5억 유로는 전부 AI 데이터센터용 생산 능력에 들어갑니다.
온세미는 올해 2분기에 생산 능력을 주력이던 자동차와 산업용보다 AI 데이터센터 고객에게 먼저 배정했습니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올해 2월 아마존웹서비스와 다년 계약을 맺었습니다. 아마존이 짓는 클라우드와 AI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반도체를 공급하는 계약이고, 전력을 다루는 칩뿐 아니라 통신용 칩과 제어용 칩까지 함께 넣습니다. 규모는 수십억 달러입니다.
눈에 띄는 것은 계약에 딸린 조건입니다. ST는 아마존이 앞으로 7년 동안 ST 주식 약 2,480만 주를 정해 둔 값에 살 수 있는 권리를 함께 주었습니다. 부품을 사는 쪽이 파는 회사의 주주가 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물건만 주고받는 관계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간 형태입니다.
시장 전망도 같은 방향입니다.

그림 3. AI 데이터센터용 전력반도체 시장
조사업체 테크인사이츠는 AI 데이터센터용 전력반도체 시장이 올해 50억 달러에서 2031년 143억 달러로 커질 것으로 봤습니다. 해마다 24.6%씩, 5년 만에 약 세 배입니다.
한국은 어디즈음에 있을까
여기서 한국의 포지션을 보겠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세계에 세 회사뿐이고 그중 둘이 한국 회사입니다. 그런데 전력반도체는 사정이 다릅니다.
인피니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텍사스인스트루먼츠, 그리고 중국의 이노사이언스는 이미 1~2년 전부터 질화갈륨 반도체를 팔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2023년에 발광다이오드 사업부를 개편해 화합물 반도체 전담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용인 기흥에 웨이퍼 기준 월 1,300~1,500장 규모의 8인치 질화갈륨 전용 라인도 지었습니다. 2025년에 가동할 계획이었는데 시장이 예상보다 부진해 2026년 말로 미뤘습니다.
그러던 지난 7월 말, 디일렉이 이 라인에서 나온 문제를 전했습니다. 삼성전자가 시험 삼아 만들어 본 칩 가운데 일부가, 100도에서 200도 사이의 온도에 1,000시간쯤 놓아 두자 작동을 멈췄다는 것입니다.
삼성전자가 통과하지 못한 시험이 고온 시험이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이 열입니다.
질화갈륨 반도체는 애초에 뜨거운 자리에 쓰라고 만든 부품입니다. 200도가 넘는 환경에서도 멀쩡히 돌아가야 값을 합니다. 그 온도를 못 버티면 아무리 값이 싸도 쓸 수가 없습니다. 삼성전자는 원인을 파악하는 중이고, 회사 관계자는 양산 전 개발 단계에서 나타난 문제라 불량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같은 반도체라고 다 같은 반도체가 아닙니다.
메모리는 작게, 빽빽하게, 빠르게 하는게 핵심입니다. 전력반도체는 뜨겁고 높은 전압을 오래 견디는 것이 핵심입니다. 잘하는 것이 다릅니다. 한쪽에서 세계 최고여도 다른 쪽에서 꼴지일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전력반도체 위탁생산 회사인 DB하이텍이 앞으로 5년간 약 2조 원을 들여 고전압 전력반도체 생산 능력을 늘리고 실리콘카바이드와 질화갈륨 사업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럼 무엇을 보면 될까
AI 이야기에서 늘 주인공은 그래픽카드입니다. 몇 장을 확보했는지, 언제 받는지가 뉴스가 됩니다.
그런데 그 카드에 전기를 넣어 주는 부품 쪽에서 지금 자리다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카드를 아무리 많이 사 놓아도 랙까지 전기를 손실 없이 보내지 못하면 다 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확인할 것은 삼성전자의 질화갈륨 라인이 실제로 언제 돌기 시작하는가입니다. 2026년 말이라고 했다가 미뤄진 그 일정이 다시 지켜지는지를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 휴대폰을 꽂아 두고 충전기가 따뜻해지면, 그 따뜻함이 사라진 전기라는 것을 한 번 떠올려 보셔도 좋겠습니다. 데이터센터에서는 같은 일이 건물 단위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 전자신문, 「AI 데이터센터, 전력반도체 업계 '새 먹거리' 급부상」, 2026.8.9 — 인피니언 투자 22억→27억 유로, 온세미 생산능력 우선 배정, ST-AWS 계약, DB하이텍 5년 2조 원, 테크인사이츠 시장 전망 50억→143억 달러(연 24.6%)
- 디일렉, 「삼성 GaN 파운드리 양산 또 해 넘기나…시험생산서 '불량' 확인」, 2026.7.31 — 용인 기흥 월 1,300~1,500장 규모 8인치 GaN 라인, 시험생산 칩 일부 100~200℃ 1,000시간 노출 시 작동 정지, 2023년 CSS 사업부 발족, 2025년 가동 계획을 2026년 말로 연기
- STMicroelectronics 뉴스룸 및 관련 보도, 2026.2.9 — AWS와 다년·수십억 달러 규모 협력 확대. 고대역폭 연결, 혼합신호, 마이크로컨트롤러, 아날로그·전력 IC 공급. AWS에 7년간 약 2,480만 주 매입 권리(워런트) 부여
- 텍사스인스트루먼츠, 「800VDC 아키텍처로 데이터 센터 전력 공급의 과제 해결」 기술자료 — AI 서버 랙 전력 120kW~500kW, 2020년대 말 1MW 전망
- Power Electronics News · Avnet Silica · PatSnap 등 업계 기술자료 — SiC는 650V~1,700V 이상, GaN은 80V~650V 대역이 주력
© 2026 AI7L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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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표기: AI7LAYER, 「충전기가 뜨거워지는 이유가 지금 데이터센터의 숙제입니다」, 2026.9.8, ai7lay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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